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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지구 반대편의 낯선 거리를 걷다가 익숙한 소리를 들었다. 귓가를 스치는 단어 하나, 분명한 한국어였다. 순간 걸음을 멈췄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주위를 둘러봤지만, 이곳은 분명 한국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들려왔다. "여기 자리 있어요?"

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반가움과 신기함이 밀려왔다. 한국을 떠나와 머나먼 나라에서 생활한 지 오래되었고, 한국어를 들을 일이 거의 없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우연히, 뜻밖의 장소에서 내 모국어를 듣게 되다니. 마치 오래된 친구를 길에서 마주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여행을 하면서 주변의 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익숙한 억양, 친숙한 표현, 누군가 흘리는 작은 한국어 단어 하나에도 민감해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장소에서 한국어를 들을 때마다, 가슴 한편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한국과 나를 연결해 주는 보이지 않는 끈이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것처럼.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만난 한국의 흔적

여행을 하다 보면, 한국과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곳에서 뜻밖의 한국어를 마주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유럽의 작은 마을에서 ‘김치’라는 단어를 듣거나, 남미의 시장에서 상인이 서툰 발음으로 ‘안녕하세요’를 외치는 순간처럼. 한국의 문화가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내가 처음으로 이런 경험을 한 곳은 스페인의 한 작은 카페였다. 바르셀로나 외곽의 조용한 마을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한 외국인이 서툰 발음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그의 대화를 유심히 들어보니,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현지인이었다. 궁금한 마음에 다가가 말을 걸어 보니, 그는 K-드라마를 보고 한국어에 매력을 느껴 독학 중이라고 했다. 그날 우리는 한국어와 스페인어를 섞어 가며 긴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이런 경험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태국의 한 시장에서 “떡볶이”를 파는 노점을 본 적도 있었고, 페루의 한 숙소에서 주인이 한국 여행객을 맞이하기 위해 “어서 오세요”라는 문장을 연습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한국어가 울려 퍼지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자랑스러웠다.

한국어를 통해 연결된 인연

그날, 한국어를 들었던 그곳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혹시 한국 분이세요?" 상대방도 나만큼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반갑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연히 같은 도시에 머무르고 있던 한국인 여행자였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나마 한국에서처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한국어를 통해 맺어진 인연은 그뿐만이 아니다. 어느 나라를 가든, 한국어를 조금이라도 아는 현지인을 만날 때가 있다. 한 식당에서 주인이 서툴지만 정성스럽게 "맛있게 드세요"라고 인사했던 기억, 길을 걷다가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외국인과 대화를 나눴던 순간들. 이처럼 한국어는 단순한 언어를 넘어, 나와 세상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고 있었다.

몇 년 전, 나는 독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던 중 뜻밖의 인연을 만났다. 한 현지인 동료가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와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어를 배우고 있어요”라고 말한 것이었다. 그는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한글의 과학적 구조에 감탄하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가르쳐 주며 친해졌고, 덕분에 독일 생활이 한층 더 즐거워졌다.

이처럼 한국어는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한국어를 통해 연결된 인연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우연이 아니라, 때로는 소중한 친구가 되고, 때로는 다시 찾고 싶은 추억이 되었다.

세계 속의 한국어, 그 반가운 울림

이제 한국어는 더 이상 한국에서만 통하는 언어가 아니다. K-드라마, K-팝, 한식과 함께 한국어도 세계 곳곳으로 퍼지고 있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한국어를 듣고 반가워하는 일이 많아졌다.

몇 년 전만 해도 해외에서 한국어를 들으면 ‘특별한 일’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점점 더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가고 있다. 해외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어가 하나의 문화적 상징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캐나다의 한 도서관에서 ‘한국어 교재’ 코너를 발견한 적이 있다. 생각보다 많은 책이 있었고, 몇몇 외국인들이 한국어 책을 펼쳐 놓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한국어가 단순한 외국어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이 되고, 꿈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뜻밖의 장소에서 한국어를 듣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리고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음을 체감하는 순간이다. 앞으로도 여행을 하면서, 낯선 곳에서 한국어를 듣게 될 날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또다시 걸음을 멈추고, 미소 지으며 그 소리를 반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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