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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과 보호자 사이의 유대는 단순한 애정이 아니라 함께 살아온 시간과 감정이 쌓여 만들어진 특별한 관계입니다. 수의사로서 그 유대를 곁에서 지켜보며, 저는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마음까지 돌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어요. 보호자의 눈빛에 담긴 불안과 사랑, 반려동물이 보여주는 믿음과 의지.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진짜 역할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됩니다. 이 글은 진료 현장에서 마주한 수많은 순간들을 통해, 보호자와 반려동물의 유대가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지, 그리고 그 안에서 수의사로서 내가 어떤 가치를 전해야 하는지를 진심을 담아 이야기합니다.

보호자와 반려동물의 유대는 말보다 깊었어요

“선생님, 이 아이는 제 마음을 알아요.” 보호자분의 이 한마디가 진료실의 분위기를 바꾸었던 순간이 있어요. 진찰대 위에서 조용히 보호자를 올려다보는 작은 푸들 한 마리.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읽는다는 게 이런 걸까 싶었어요. 처음에는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자리였던 진료실이, 어느새 감정이 오가는 공간으로 바뀌는 걸 느끼게 됐죠. 반려동물과 보호자 사이의 유대는 정말 특별해요. 단순히 오래 함께해서 생긴 익숙함이 아니라, 서로를 통해 삶을 살아내는 방식이 닮아가는 거예요. 어떤 보호자분은 강아지와 단둘이 여행을 다녔던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어떤 분은 반려묘와 함께한 마지막 밤을 평생 간직하겠다고 하셨어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저는 늘 고개를 끄덕이게 돼요. 이해가 돼서가 아니라, 그 감정이 너무 깊고 순수해서 차마 다른 말은 필요 없기 때문이에요. 진료실에 들어서는 순간, 어떤 보호자들은 말없이 울기도 하세요. 아이가 겪고 있는 고통이 곧 자신의 고통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진료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보호자의 눈을 바라봐요. 그 안에 어떤 감정이 담겨 있는지를 읽기 위해서요.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함께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그 시선 하나에도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 유대의 힘이 치료의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라고 믿어요. 반려동물은 단순한 가족을 넘어, 보호자의 삶 자체이기도 하거든요. 그런 존재를 다룬다는 건 단순히 의학적 접근만으로는 부족해요. 보호자와 아이 사이의 관계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태도부터가 바로 수의사의 책임이 아닐까 싶어요.

감정을 공감할 때 비로소 치료가 시작돼요

진료라는 건, 단지 의학적으로 옳은 선택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많아요. 때로는 치료보다 먼저 감정을 읽어야 하고, 설명보다 먼저 위로가 필요한 순간도 있어요. 아이가 아프다는 사실만으로도 보호자는 이미 상처를 입은 상태거든요. 진단명을 설명하는 순간, 보호자분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고, 치료 방향을 말하려고 해도 고개를 떨군 채 듣지 못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땐 저는 조용히 진료실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아주 천천히 말해요. “저도 많이 아파봤고, 그래서 지금 보호자님의 마음이 어떨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그런 말 한마디에 눈을 마주치는 순간, 보호자와의 거리감이 사라지는 걸 느껴요. 저는 그걸 ‘감정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라고 부르곤 해요. 감정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치료도 정보도 마음속 깊이 들어가지 않더라고요. 감정을 공감한다는 건 단순히 위로의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보호자의 말에 집중하고, 눈빛에 반응하고, 그들이 들려주는 사소한 이야기까지도 귀 기울이는 자세라고 생각해요. 예전에 한 번, 강아지가 급성 췌장염으로 입원했던 적이 있었어요. 보호자분은 아이가 병원에 있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도시락을 싸오셨고, 입원실 유리창 너머로 매일 아이에게 말을 걸었어요. 저는 그 모습을 보며, 이 치료는 제가 하는 게 아니라 보호자와 아이가 함께 만들어가는 거구나 싶었어요. 보호자의 사랑이 아이의 회복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똑똑히 본 시간이었죠. 그래서 지금도 진료를 할 때면 늘 묻곤 해요. “요즘 아이와 집에서 어떻게 지내세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요. 병력청취 전에, 그들의 일상과 관계를 먼저 이해하고 싶어서요. 치료는 단순한 처방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서 출발한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수의사로서 내가 줄 수 있는 진짜 가치

가끔은 스스로에게 질문해요. ‘내가 이 자리에서 정말 해줄 수 있는 게 뭘까?’라고요. 약을 처방하고, 수술을 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은 수의사의 기본적인 역할이에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진짜 가치는 그 이상의 것들에 있어요. 보호자가 치료를 결정할 때 덜 두려워할 수 있도록 돕는 일, 아이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의 마지막 순간까지 곁에 함께 있어주는 마음. 이게 진짜 수의사의 역할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어느 날, 오랜 지병을 앓던 강아지 ‘달이’가 마지막 진료를 받으러 왔어요. 보호자분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오신 듯했지만, 막상 ‘이제 아이가 편히 갈 수 있도록 도와드릴게요’라는 말을 들으시고는 그대로 주저앉으셨어요. 저는 그날 말없이 손을 내밀고, 보호자와 함께 아이의 발을 잡았어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시간은 어떤 치료보다도 깊은 위로였다고 믿어요. 그 순간 제가 해줄 수 있었던 일은 병을 고치는 게 아니라, 마음을 지켜주는 일이었어요. 수의사라는 직업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감정을 마주하게 만들어요. 때로는 벅차고, 때로는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런 순간이 있기에 이 일은 더 깊은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해요. 저는 앞으로도 진료실 안에서 보호자와 반려동물의 유대를 가장 먼저 바라볼 거예요. 그리고 그 유대가 무너지지 않도록,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할 거예요. 따뜻하게 설명하고, 조심스럽게 판단하고, 진심으로 대화하며. 그게 제가 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소중한 가치라고 믿어요.

마무리

보호자와 반려동물 사이의 유대를 지켜보며 저는 단순한 치료 이상의 가치를 고민하게 됐어요. 아이를 향한 보호자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그 사랑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매일 느끼며 진료하고 있어요. 그런 유대를 존중하고 지지하는 것, 그 속에서 제가 해줄 수 있는 일들을 진심으로 마주하는 것. 그것이 수의사로서, 또 사람으로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철학이에요. 이 글이 누군가에게 따뜻한 공감으로 전해졌으면 좋겠고, 보호자와 반려동물을 대하는 모든 분들이 그 유대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느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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