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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여행을 떠났을 때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가슴이 뛰었고, 낯선 언어가 들리는 거리에서 설레었으며, 매일 아침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는 것이 신기했다. 지도를 펴고 어디로 갈지 고민하는 시간조차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득 깨닫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여행이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닌, 당연한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떠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고, 새로운 도시를 만나는 것이 더 이상 큰 설렘을 주지 않았다. 공항도, 기차역도, 낯선 골목도 이제는 익숙해져 버렸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과연 나는 여행을 계속하며 처음의 설렘을 유지할 수 있을까?’
여행이 특별한 순간에서 일상이 되기까지
처음 몇 번의 여행은 하나하나가 강렬한 경험이었다. 새로운 나라에 발을 디딜 때마다 가슴이 뛰었고, 첫날 밤 호텔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불빛이 그렇게 낭만적일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행이 점점 일상이 되기 시작했다. 숙소를 예약하는 일,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받는 일, 지하철 노선을 찾고, 새로운 식당을 찾아다니는 일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의 일부가 되었다.
한 도시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여행지에서도 비슷한 루틴이 만들어졌다. 아침이면 커피를 마시고, 노트북을 켜고, 이메일을 확인하고, 오후가 되면 익숙한 골목을 걸으며 저녁 식사를 고민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이제는 공항에서 긴장하지도 않고, 호텔 체크인도 손쉽게 해낸다. 가끔은 다음 여행지를 정하는 것이 여행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다음 스케줄을 계획하는 일’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렇게 여행은 더 이상 비일상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설렘을 잃어버리는 순간
여행이 일상이 되면서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설렘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비행기 표를 예약하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이 넘쳤는데, 이제는 ‘또 떠나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예전에는 새로 도착한 도시에 내리기만 해도 신기했는데, 이제는 ‘도착하면 짐부터 풀어야겠네’라는 현실적인 고민이 먼저 떠올랐다.
가끔은 낯선 곳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제도 여기 있었던 것처럼 익숙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이 도시는 처음인데, 왜 이렇게 낯익게 느껴질까?’ 여행이 주었던 신선한 감각이 점점 무뎌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더 이상 풍경이 감동을 주지 않을 때였다. 이전에는 작은 골목도, 평범한 시장도, 우연히 만난 노을도 감탄할 만큼 아름다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순간들이 단순한 ‘일상적인 장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여행이 일상이 된다는 것은 곧 여행의 설렘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여행의 설렘을 유지하는 법
그렇다면 여행을 계속하면서도 처음의 설렘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나는 몇 가지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새로운 방식으로 여행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도시를 이동하는 것만이 아니라, 전혀 다른 여행 스타일을 경험해 보는 것이 필요했다. 호텔이 아닌 현지인의 집에서 머물러 보거나, 단기적으로 일을 하며 그곳의 삶을 경험해 보거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지역을 찾아가는 것. 여행 속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만들면 다시금 처음의 긴장감과 설렘이 돌아왔다.
두 번째는, 느린 여행을 해보는 것이었다. 여행을 자주 하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이곳을 다 봤으니 이제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곤 한다. 하지만 속도를 늦추고, 한 곳에서 오래 머물며 현지인처럼 살아보면, 다시금 여행이 새롭게 다가왔다. 하루 이틀 머물던 곳에서 몇 주, 혹은 몇 달을 지내다 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 번째는, 아주 작은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었다. 처음 여행을 시작했을 때는 모든 것이 감동이었지만, 점점 그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라도 매일 하나씩 새로운 순간을 기록하려고 했다. ‘오늘 본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무엇이었지?’ ‘오늘 마신 커피는 어떤 맛이었을까?’ 이런 작은 것들을 다시금 음미하다 보면, 잃어버렸던 감각이 조금씩 되돌아왔다.
마지막으로, 잠시 여행을 멈춰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계속해서 새로운 곳을 옮겨 다니다 보면, 아무리 멋진 풍경이라도 익숙해져 버릴 수밖에 없다. 그럴 때는 잠시 멈추고, 한 곳에서 머물거나, 여행이 아닌 일상적인 생활을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여행을 계속하는 이유
여행이 일상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그만큼 여행을 오래 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여행 자체가 목표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행은 내 삶의 방식이 되었고,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갔다.
그렇다면 여행이 일상이 되어도 괜찮은 걸까?
나는 이제야 그 답을 찾았다. 여행은 반드시 설렘을 동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삶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처음의 설렘이 줄어든다고 해서 여행이 의미 없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여행이 특별한 이벤트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일상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여행 속에서 내가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지, 그리고 여행이 내게 여전히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나는 여전히 여행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처음보다 더 깊이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매 순간이 새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대신 여행이 내게 주는 것들을 조금 더 깊이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설렘이 사라진다고 해서 여행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여행이 내 삶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여행이 일상이 되어도, 나는 여전히 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여행이 내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를 고민하며 걸어가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걸어가면서, 잊고 있던 설렘을 다시 발견하는 순간들도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