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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유튜버로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모든 장면을 ‘영상에 담을 수 있을까?’라는 기준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하지만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카메라를 내려놓았을 때 찾아왔어요. 이 글은 기록되지 않았기에 더 진하게 남은 여행의 기억, 오롯이 나 자신으로서 마주한 순간들, 그리고 촬영이 아닌 ‘경험’으로 채워진 여행의 참된 의미를 이야기합니다. 영상으로는 담을 수 없었던 장면들이 오히려 내 마음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다는 걸 깨달으며, 진짜 여행이란 무엇인지 돌아보는 시간을 나눕니다.

촬영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시작된 여행

처음에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게 너무나 당연했어요. ‘여행 유튜버’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다 보면 무언가를 기록하는 게 습관이 되고, 아름다운 장면을 보면 본능처럼 촬영 버튼을 누르게 되죠.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모든 순간이 ‘콘텐츠’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길거리의 풍경도, 식당의 분위기도, 심지어 나의 감정조차도 ‘영상으로 담기에 적절한가’를 먼저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날, 우연히 카메라를 놓고 나선 여행에서 저는 전혀 다른 감정을 마주하게 되었어요. 목적지는 일본의 작은 시골 마을이었어요. 촬영 계획도 없이 떠난 짧은 휴식 같은 일정이었죠. 숙소에 카메라를 두고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 나선 마을 산책은 처음엔 어색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제 감각들이 하나씩 살아나는 걸 느꼈어요. 눈으로는 풍경을, 귀로는 새소리를, 발끝으로는 흙길의 감촉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이전엔 항상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바라봤다면,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내 눈으로 세상을 느끼고 있었어요. 작고 조용한 찻집에 들어가 따뜻한 말차를 마셨던 그 오후, 아무도 찍어주지 않았지만 저는 분명히 ‘나를 담고’ 있었어요. 찍지 않아도 기억나는 장면들이 있잖아요. 그게 바로 그날의 풍경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진짜 여행은 카메라를 들었을 때가 아니라 내려놨을 때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록은 사라졌지만, 감정은 더 선명하게 남아 있었거든요. 그 후로 저는 일부러 하루쯤은 카메라를 내려두는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어요. 온전히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시간, 그건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진짜 나를 위한 여행이었어요.

카메라 없이 느낀 진짜 감정의 깊이

카메라를 손에서 놓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들이 있었어요. 그중 하나는 사람의 표정이었어요. 촬영 중에는 구도를 맞추느라, 조명을 보느라 바빠서 정작 옆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지나치기 쉽거든요. 그런데 촬영이 없었던 어느 날, 이탈리아 피렌체의 작은 광장에서 길거리 공연을 보다가 옆자리 노부부의 손을 마주 잡은 모습을 봤어요. 말없이 손가락을 꼭 잡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던 그 모습은 몇 초였지만 정말 깊고 따뜻했어요. 영상으로 담을 수 없었기에 오히려 마음에 더 오래 남았어요. 또 한 번은 프랑스 어느 시골 마을의 벼룩시장에서 할머니가 제게 손수건 하나를 건네주시며 미소 지으셨던 순간이 있었어요. 저는 프랑스어를 못하고, 그분은 영어를 전혀 못하셨지만, 묘하게 통하는 게 있었어요. 그냥 그곳에서 눈을 맞추고 함께 웃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그때는 아무 기록도 없고, 심지어 핸드폰 사진조차 남기지 않았지만 저는 그 감정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해요. 아마 영상으로 남겼다면 순간을 보존할 수 있었겠지만, 그 순간의 ‘깊이’는 덜했을지도 몰라요. 카메라는 분명 많은 걸 남기지만, 동시에 많은 걸 방해하기도 해요. 때로는 앵글을 위해 나의 위치를 조정해야 하고, 한 장면을 위해 마음보다 장비를 먼저 생각하게 되죠. 하지만 감정은 그런 식으로 담을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카메라가 없이 그저 사람을 바라보고, 장소를 느끼고, 순간에 몰입할 때 진짜 감정은 스스로 기록되어요. 내 안에, 아주 깊은 곳에 말이죠. 그래서 저는 이제 알 것 같아요. 진짜 여행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채우는 거라는 걸요.

진짜 여행을 기억하는 나만의 방식

이제는 여행을 갈 때 일부러 하루쯤은 ‘카메라 금지’ 시간을 만들어요. 그날은 영상도 사진도 없고, SNS도 켜지 않아요. 대신 그날의 감정을 글로 남기거나, 짧은 문장으로 일기장에 적어두곤 해요. 어떤 날은 그냥 향기 하나, 대화 한 줄, 누군가의 웃는 얼굴만 적혀 있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기록이야말로 오히려 더 오래, 더 선명하게 제 안에 남아요. 내가 진짜 여행자였던 순간은 셔터를 누르지 않았던 그 시간들이었고, 그때 만난 나의 모습이 가장 진실했던 것 같아요. 저는 유튜버이자 여행자이지만, 때로는 이 두 정체성이 충돌하기도 해요. 콘텐츠를 위해 움직이는 순간에는 감정보다는 구도에 집중하게 되고, 자연스러운 나보다는 ‘보여주는 나’를 앞세우게 되니까요. 그래서 가끔은 ‘내가 여행을 정말 사랑하고 있나? 아니면 일처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질문이 들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처음 여행을 시작했던 그 마음을 떠올리려 해요. 좋아서, 궁금해서, 설레서 떠났던 그때의 감정 말이에요. 그리고 여전히 나의 여행이 설렘을 잃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면, 다시 카메라를 드는 마음도 가벼워져요. 진짜 여행은 카메라에 담긴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그 기억들이에요. 잊을 수 없는 감정, 잊히지 않는 표정, 그리고 말없이도 이어졌던 교감들. 그래서 저는 이제 영상으로는 남기지 않았지만 가장 선명한 기억들을 마음속에 고이 간직해요. 그리고 언젠가 그 기억을 꺼내 다시 글로, 말로, 진심으로 전하게 될 날이 올 거라 믿어요. 촬영이 아닌 진짜 여행의 순간은, 결국 나의 삶을 더 깊게 만들어주는 시간이었어요.

마무리

모든 걸 담으려 했던 여행에서, 아무것도 담지 않았던 그 순간들이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다는 건 참 역설적이에요. 기록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카메라에 담기지 않아도 진짜 중요한 건 사라지지 않아요. 오히려 촬영을 포기했기 때문에 내 안에 더 깊게 남았던 기억들. 그게 바로 진짜 여행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저는 때때로 카메라를 내려두고,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진짜 여행자’로서의 나를 놓치지 않으려 해요. 그 순간들은 영상보다 오래 남고, 사진보다 따뜻하게 마음을 채워주니까요. 여러분도 여행지에서 한 번쯤은 카메라를 내려두고,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보세요. 아무도 기록해주지 않아도, 당신의 마음은 그 순간을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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