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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나라에서 몸이 아프면 두려움부터 밀려옵니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그곳에서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실감하게 되죠. 이 글은 해외 여행 중 갑작스럽게 병을 겪으며 느꼈던 외로움, 낯선 병원에서 겪은 긴장된 순간들, 그리고 그 속에서 뜻밖에 받았던 친절과 도움을 담담하게 기록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여행의 기억은 어느새 가장 따뜻한 순간으로 남았고, 그 나라를 떠올릴 때마다 도움을 건네던 이들의 얼굴이 먼저 떠오릅니다. 해외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누구라도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은, 현실적이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여행 중 갑작스러운 병으로 모든 게 멈췄어요
사실 여행을 떠날 때는 아무런 걱정도 없었어요. 오히려 “이번엔 진짜 나를 쉬게 해줘야지”라는 마음 하나로 짐을 쌌고, 공항에 도착했을 땐 설렘이 가득했죠. 도착지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였어요. 음식도 맛있고, 날씨도 좋고, 도시 전체가 활기찬 에너지로 가득해서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그런데 여행 4일째 되는 날 아침, 눈을 떴는데 몸이 너무 무거운 거예요. 처음엔 단순히 피곤한 줄 알았어요. 많이 걸었고, 일정도 타이트했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몸이 낫질 않고, 체온은 점점 오르고 있었어요. 열이 나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 무서웠던 건,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내가 아프다는 현실이었어요.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는데, 그 활기찼던 도시가 너무 낯설게 느껴졌어요. ‘만약 더 심해지면 어떡하지? 병원은 어디로 가야 하지? 영어도, 스페인어도 유창하지 않은 내가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머릿속에 질문이 쏟아졌고, 그 어느 때보다 외롭고 작아진 기분이 들었어요. 가족도 친구도 없고, 나 하나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그제서야 실감하게 됐죠. 그렇게 하루를 누워서 보내고, 다음 날이 되어서야 몸을 일으켜 숙소 근처 약국을 찾아갔어요. 짧은 영어로 “열이 나요, 기침도 있어요”라고 설명했더니, 약사분이 걱정된 눈빛으로 약을 건네주셨어요. 그 순간 눈물이 날 뻔했어요. 그냥 ‘괜찮냐’고 물어주는 그 따뜻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녹아내렸거든요. 병이라는 건 단순히 몸의 고장이 아니라, 마음까지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고, 여행이라는 낯선 공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는 걸 깊이 느꼈어요.
외국 병원에서 마주한 낯설고 불안한 순간들
약을 먹고도 증상이 낫질 않아서 결국 현지 병원을 찾아야 했어요. 사실 병원을 찾아간다는 결정 자체가 저한텐 큰 용기였어요. 해외여행 중 병원이라니, 생각만 해도 막막했어요. 검색을 통해 외국인도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 예약을 했고,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 길 내내 손에 땀이 맺혔어요. 접수대에 섰을 때는 ‘내 말이 제대로 전달될까’라는 불안함과 ‘혹시 진료비가 엄청 비싸진 않을까’라는 걱정이 동시에 밀려왔죠. 진료실에 들어서자 젊은 여성 의사 선생님이 저를 맞이해주셨어요. 다행히 영어가 가능한 분이었고, 제 말을 끝까지 차분하게 들어주셨어요. “언제부터 증상이 있었나요?”, “기저질환은 없으세요?” 하나하나 물어보며 메모를 하시던 모습에서 전문성과 신뢰가 느껴졌어요. 진료가 끝나고, 선생님은 “당장은 큰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며칠은 꼭 푹 쉬셔야 해요. 혼자 있으시다니 더 조심하셔야 해요.”라고 말해주셨어요. 그 말에 다시 한 번 울컥했어요. 병을 앓는다는 건 단지 고통을 참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 속에서도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정을 느끼는 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처음으로 실감했어요. 병원 직원분들도 너무 친절하게 챙겨주셨고, 진료비나 약 처방에 대해서도 천천히 설명해주셨어요. 저는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몰라요. 그 병원에서 보낸 1시간 남짓한 시간이 제겐 여행의 전환점이 되었어요. 여전히 몸은 힘들었지만, 그들과의 짧은 교감이 마음의 두려움을 조금은 덜어주었거든요. 병원이라는 공간은 어디서든 낯설고 차가울 수 있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언어를 넘어 전해질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특히 외국이라는 환경에서 겪는 질병은 몸보다도 마음의 회복이 더 중요하다는 걸 절절히 느꼈죠.
낯선 나라에서 만난 도움, 그리고 잊지 못할 마음들
그 이후 며칠 동안 저는 숙소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냈어요. 여행지 곳곳을 다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천천히 걷고 천천히 쉬면서 주변을 더 깊이 바라볼 수 있었어요. 어느 날 숙소 직원분이 방 문을 두드리더니 조그마한 바나나와 빵, 따뜻한 차를 건네주시며 “오늘은 좀 나아 보이시네요”라고 웃으셨어요. 제가 상태가 안 좋다는 걸 알고 매일 슬쩍 눈으로 상태를 살피셨던 거였어요. 말은 많지 않았지만 그 눈빛과 행동에서 큰 배려가 느껴졌고, 그 친절이 저에겐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또 어느 날은 같은 층에 묵던 일본인 여행객이 제게 감기약을 건네며 “제가 가져온 여분이에요.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라고 말해줬어요. 그분과는 이전에 간단한 인사만 나눴던 사이였지만, 그 따뜻한 마음 덕분에 말 그대로 ‘국적을 넘어선 위로’를 받았죠. 여행을 하다 보면 멋진 풍경도 기억에 남지만, 결국 마음을 움직이는 건 사람인 것 같아요. 특히 아플 때, 몸과 마음이 가장 약해졌을 때 받은 작은 친절은 시간이 지나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요. 그때 나를 도와준 사람들의 얼굴은 지금도 떠오르고, 그 나라에 대한 인상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서 ‘따뜻했던 곳’이라는 이미지로 남아 있어요. 저는 그 경험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여행을 오는 외국인을 보면 더 먼저 다가서게 되었어요. 길을 묻거나 도움을 요청하면 한 번 더 자세히 설명하고, 아픈 기색이 보이는 분에겐 조심스럽게 “필요한 거 있으세요?”라고 말을 걸게 되었죠. 나 역시 누군가의 여행에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요. 낯선 나라에서 병에 걸린 경험은 힘들었지만, 동시에 사람의 온기를 깊이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에요. 그 기억이 저를 더 다정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 같아요.
마치며
낯선 나라에서 아픈 경험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에요. 언어의 장벽, 문화의 차이, 익숙하지 않은 시스템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건 생각보다 어렵고 막막하죠. 하지만 그 속에서 건네받은 따뜻한 손길, 작은 말 한마디, 배려 어린 눈빛은 오히려 그 여행을 더 깊고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들어줬어요. 우리는 모두 어디선가 낯선 여행자였고, 누군가의 친절로 버텨온 경험이 있을 거예요. 그 기억은 결국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내가 먼저 다가설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줍니다. 아팠기에 기억되는 여행, 고마웠기에 잊히지 않는 나라. 저는 이제 낯선 곳에서 아픔이 두렵지 않아요. 그 안에 사람의 따뜻함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