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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던 시절, 히치하이킹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 안에는 예기치 못한 긴장감과 낯선 만남의 연속이 있었습니다. 위험 속에서 마주한 인간미, 그리고 그날의 감정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깊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히치하이킹이 남긴 특별한 흔적을 돌아봅니다.

히치하이킹에서 만난 두려움과 잊지 못할 순간들 (44편)

히치하이킹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누군가에게 히치하이킹은 낭만일 수 있습니다. 바람 따라 길을 따라 떠나는 자유로운 여행자의 상징처럼 여겨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게 그날의 히치하이킹은 낭만과는 거리가 먼, 말 그대로 ‘필요에 의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는 돈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고, 가진 건 낡은 배낭 하나와 구겨진 버스 시간표 한 장, 그리고 이 도시에서 다음 도시로 가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여행이라기보단 생존에 가까운 이동이었고, 계획도 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 속에서 교통편조차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갑에는 동전 몇 개뿐, 지도를 펴보니 다음 목적지는 도보로 가기엔 너무 멀었습니다. 망설이다 길가에 섰고, 머릿속에선 수많은 생각이 스쳤습니다. ‘정말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이거, 위험한 거 아닐까?’ 하지만 발걸음은 이미 도로 옆으로 나아가 있었고, 오른손이 천천히 올라가 엄지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제 첫 히치하이킹은 시작되었습니다.

길을 지나는 수많은 차들이 저를 지나쳐 갔습니다. 그 순간 느껴지는 무력감, 그리고 낯선 사람의 호의에 의존해야만 하는 상황이 얼마나 불안한지를 처음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오래 지나지 않아 한 차량이 멈춰 섰습니다. 창문이 열리고, 낯선 남자의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어디까지 가요?”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고, 저는 머뭇거리며 목적지를 말했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어주었고, 저는 조심스럽게 차에 올라탔습니다. 첫 느낌은 불안했지만, 동시에 무언가에 기댈 수 있다는 안도감도 함께였지요.

낯선 차량, 긴장감으로 가득 찬 순간들

처음 차에 타고 몇 분간은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았습니다. 손에선 땀이 나고, 가방끈은 더 꼭 쥐고 있었죠. 차 안에는 음악도 없었고, 남자는 그다지 말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정적 속에서 제 머릿속은 온갖 상상으로 가득해졌습니다. '혹시 이 사람, 나쁜 의도를 가진 건 아닐까?' '이 길이 맞는 걸까?' GPS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가야 할 길에 대해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 불안감은 배가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혼자 다녀요?” 짧은 질문이었지만, 그 말투엔 딱딱함보단 다정함이 배어 있었습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을 설명했고, 그제야 그는 웃으며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인근 도시에서 일하는 트럭 운전사였고, 지금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히치하이커를 태운 건 처음은 아니라고도 했죠.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거 쉽지 않죠. 그래도 나도 예전에 이렇게 다닌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라고요." 그의 말에 묘한 위로를 느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여행의 목적, 젊은 시절의 불안, 그리고 삶의 방향 같은 것들. 목적지까지는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길이었지만, 그 시간은 어느새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마음을 열고 나니, 그 남자는 더 이상 낯설지 않았고, 저는 어느새 긴장을 풀고 웃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심이 모든 걸 덮어주지는 않았습니다. 갑작스럽게 그가 차를 샛길로 틀었을 때, 저는 다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왜, 여기로 가는 거예요?” 조심스레 물었을 때, 그는 짧게 대답했습니다. “주유소에 들를게요. 연료가 거의 없어요.” 단순한 이유였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느꼈던 심장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순간의 감정은 오직 ‘의심과 불안’뿐이었습니다.

지나고 나서야 보인 인생의 한 조각

결국 그는 정말 주유소에 들렀고, 다시 큰 길로 나서 목적지 근처에 저를 내려주었습니다. 내릴 때 그는 제게 작은 물 한 병과, 간단한 과자를 건네며 말했습니다. “조심히 다녀요. 세상엔 좋은 사람도 많고, 나쁜 사람도 많지만... 당신도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길.” 그 말은 참 담백했지만, 제게는 깊은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그 후 저는 그 경험을 여러 번 되짚어보았습니다. 한편으론 무모했고, 또 다른 한편으론 용기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히치하이킹은 단순히 목적지로 향하는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신뢰를 시험받는 경험이었고, 인간에 대한 믿음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 시간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조금 더 열린 시선을 갖게 되었습니다. 모든 만남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그 속에서 배우는 것은 분명 존재합니다. ‘사람’이 얼마나 복잡하면서도 다정한 존재인지, 그건 히치하이킹이라는 특별한 경험 속에서 절절하게 느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방식으로 이동하지 않지만, 가끔 여행지에서 히치하이커를 보면 마음이 갑니다. 그들의 불안함, 설렘, 기대, 그리고 두려움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기꺼이 멈춰 서고 싶어집니다. 한때 누군가가 저에게 베풀어준 그 작은 친절을, 이제는 제가 누군가에게 전할 차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마무리하며

히치하이킹은 단순한 이동이 아닌, 신뢰를 전제로 한 만남입니다. 그 만남은 때로 무섭고 때로 따뜻합니다. 무서웠지만, 그래서 더 잊히지 않았던 그날의 히치하이킹. 그 경험은 제 안에 깊이 새겨졌고, 지금도 제 여행과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여정 속에서 서로를 히치하이킹하는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쳐 지나간 사람들 속에서도 때때로 우리는 인생을 배우고, 마음을 나누며, 진짜 의미 있는 길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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